‘황교안 대통령 대행’에 반감 강한 野 협조 여부가 관건

▲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9일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직 대행으로 국정을 이끌게 돼 세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가결 이후 최장 8개월 간 국정을 이끌 헌정사상 9번째 ‘대통령직 대행’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당장은 정치권의 선호 여부와 관계없이 현재 국무총리를 맡고 있는 황교안 총리가 그대로 대통령을 대행하게 되는데, 비록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국정을 운영하게 되더라도 차기 대선 등 굵직한 정치 일정이 이 시기 예정되어 있는 만큼 황 총리에 반감을 갖고 있는 야권에선 이를 그대로 용인하지 않을 태세다.
 
그렇다고 야당 측이 황 총리를 대신할 마땅한 대안적 인사를 제시하는 것도 아니고 일단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는 상황이어서 여당에서도 이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이 황 총리 체제 수용 여부를 놓고 곧 바로 ‘2라운드’에 들어가게 될 것으로 전망돼 박 대통령 탄핵 이후에도 쉽게 정국이 수습되긴 어려울 것이라 관측되고 있다.
 
◆ 민주당 등 일부 野, 황교안 체제 반발 커 ‘변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그간 야권이 주도해온 만큼 대통령 대행 체제가 어느 정도 빠르게 안착할 수 있을지 역시 야권의 수용 여부가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이란 목소리가 높다.
 
먼저 현재 대통령 권한대행의 업무범위에 대해선 명시적으로 규정해 놓은 법률이 없어 황 총리가 권한대행을 맡게 될 경우 이론적으로는 장·차관 임명부터 외교안보 사안 등 모든 권한을 대통령과 동일한 수준으로 행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차기 대선 일정이라든지 국정 역사교과서 문제 등을 비롯해 야권이 민감하게 반응할 만한 사안들에 대해서도 황 총리가 이전처럼 박 대통령의 기조를 그대로 이어받아 계속 추진해나가는 것 역시 얼마든지 가능한 실정인데, 이 때문에 야권에선 황 총리 대행체제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특히 강경한 주장을 내놓고 있는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인데, 추미애 대표는 지난 8일 “황교안 총리는 박근혜 정부의 책임을 나눠져야 하는 심각한 부분이 있다. 탄핵 소추안 뜻에는 내각불신임이 포함돼 있다”며 사실상 ‘내각 총사퇴’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야권이 원내 과반을 이루고 있는 현 구도에선 국무총리 탄핵안을 여당과의 협의 없이도 단독 처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이런 주장을 펴는 것으로 풀이되는데, 추 대표는 야권 인사 중심으로 정치 회담을 만들어 황 총리 탄핵을 추진하고 과도내각도 구성하겠다고 구체적인 복안까지 내놓을 정도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 뿐 아니라 내각총사퇴나 황 총리 탄핵을 촉구하는 추 대표보다 수위는 낮지만 황 총리가 자진사퇴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민주당에서 먼저 나오고 있는데, 당내 대권잠룡 중 한 명인 이재명 성남시장은 9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내각 총사퇴는 혼란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황 총리에 대해선 “최순실 게이트 사태의 책임을 지고 (박 대통령과) 함께 사퇴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도의적으로도 합당하다”고 입장을 내놨다.
 
민주당 뿐 아니라 국민의당 역시 탄핵 정국에 본격 돌입하기 이전부터 박지원 원내대표가 황교안 대행 체제 출범을 저지하기 위한 새 거국내각부터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을 정도로 황 총리에 대한 반감은 똑같이 갖고 있는데, 실제로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은 지난 8일 자신의 SNS에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는 또 다른 박근혜”라며 “공안검사 출신이 이 엄중한 시국, 국민이 만들어낸 역사적 국면의 책임자가 된다는 것은 모욕”이라고 황 총리 체제에 반감을 드러낸 바 있다.
 
다만 국민의당에선 추 대표의 방식대로 밀어붙이는 것은 무리수란 목소리도 함께 나오고 있는데, 이상돈 의원은 9일 오전 YTN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내각 총사퇴는 헌법, 법률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라며 “카리스마를 갖춘 경제부총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부총리를 먼저 임명하고 황 총리가 퇴임하게 되면 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는 건 헌법적으로 맞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절차상 새 경제부총리를 임명해 황 총리를 대체하는 방식은 가능하지만 즉각적인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는 건 국정 공백만 장기화할 수 있고 법리적으로도 맞지 않다는 뜻인데, 아무리 야권이 정국을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추 대표처럼 무리수를 둘 경우 정략적 태도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는 뜻도 내포된 것으로 해석된다.
 
◆ 정치권 의식해 ‘黃 대행’, 관리형 체제로 국정운영 전망
 
▲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은 S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황교안 총리 대행 체제와 관련 “정치권에서 논의가 있긴 있어야 될 것”이라면서도 “이 논의가 야당 요구대로 이뤄질지는 두고 봐야 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심지어 일부에선 황교안 체제를 우선 인정하고 갈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데,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9일 황 총리 탄핵과 내각 총사퇴를 내세운 민주당 주장에 대해 “가당치 않다. (황 총리 대행체제를) 해보지도 않았는데 탄핵을 하느냐”라며 “황교안 총리는 그 임무 자체를 최소화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박 대통령 탄핵에 동참한 새누리당 비박계조차 적어도 민주당에서 내놓은 ‘내각총사퇴’ 주장에 대해선 “정략적 의도가 있다”고 보고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는데,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은 9일 S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황교안 총리 대행 체제와 관련 “정치권에서 논의가 있긴 있어야 될 것”이라면서도 “이 논의가 야당 요구대로 이뤄질지는 두고 봐야 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여당을 제외하곤 정치권에서 황 총리를 향한 부정적 시선이 여전히 상당한 만큼 황 총리가 이 같은 분위기를 의식해 민감한 현안에 손대는 일은 최소화하며 과거 사례를 참고해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국정을 이끌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황 총리는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권한대행을 맡았던 고건 전 총리 체제를 참고한 매뉴얼까지 만든 것으로 알려졌는데, 고 전 총리처럼 국정을 운영할 경우 국방과 외교, 치안 등의 분야를 우선 챙기면서 내치 분야는 청와대 비서실의 보좌를 받아 ‘관리형’ 체제로 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이 비록 대통령직 직무 정지로 헌재 판결만 기다리는 처지가 됐더라도 황 총리가 고 전 총리 때처럼 청와대를 최대한 존중하는 자세를 보일 것으로 예견되는 만큼 청와대 수석회의와 보좌관 회의를 자신이 주재하지 않는 것은 물론 주요 정부 정책이나 차관급 인사 등에 대해서도 총리실 공보실이 아닌 청와대 대변인실에서 발표하게 할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그렇다고 해도 헌재의 탄핵 심판 결과가 얼마나 빨리 나오느냐에 따라 조기 대선 시점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등 유력 대권주자들은 정국 불예측성에 대한 불안감과 황 총리 체제가 차기 대선까지 준비할 가능성에 대한 부담으로 대통령직 대행 교체를 지속적으로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 향후 황 총리가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해 나갈 수 있을지 여부는 정치권의 협조에 달렸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 중에서도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일찌감치 황 총리 권한대행에 적극 힘을 실어왔는데, 탄핵안 표결 일주일 전인 지난 2일 이미 정진석 원내대표는 황 총리를 권한대행으로 못 박은 바 있고 친박계 홍문종 의원도 9일 오전 MBC라디오에 출연해 대통령직 권한대행을 규정한 헌법 71조를 들어 “황 총리는 법적으로 권한대행”이라며 “다 함께 그만두면 도대체 정부를 누가 어떻게 운영하겠느냐”며 황 총리 대행체제에 부정적인 야권의 태도를 비판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황 총리는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서가 청와대에 전달되는 즉시 박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다는 점에서 국정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체 없이 긴급 국무회의를 열고 대국민담화도 낼 계획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벌써부터 세간의 이목은 앞으로 수개월 간 국정을 이끌 황 총리 대행에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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