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롯데 재상장 외에는 모호한 공약들, 비리그룹 낙인 벗으려면

▲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신동빈 롯데회장이 25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의 뜻과 함께 쇄신안을 발표했다. ⓒ뉴시스
[시사포커스/ 고승은 기자]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신동빈 롯데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들로부터 재신임을 받으면서 한숨을 돌렸다. 일단 경영권 위협에서는 벗어난 셈이다.
 
롯데홀딩스는 26일 오전 일본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사옥에서 오전 9시30분부터 정오께까지 이사회를 열었다. 신 회장은 이사회에 참석해 최근 검찰로부터 '불구속 기소'된 과정과 혐의 내용 등을 설명하고, 무죄 추정의 원칙 등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서 이사진들은 신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직 직무를 계속한다고 밝혔다.
 
신동빈 회장은 25일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을 포함한 총수일가(신격호 총괄회장,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서미경 씨) 등이 무더기 기소된 데 대해 사과하고 “도덕성을 우선으로 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법률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회장 직속 준법경영위원회 설립 방침을 전했다.
 
그러면서 쇄신안으로 ▲순환출자 해소를 통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 ▲검찰수사로 중단된 호텔롯데 상장 재추진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오던 정책본부 축소 재편 ▲양적 성장에서 사회와 산업 생태계를 고려한 질적성장 전환 ▲투자 및 고용 확대 등을 내놓았다.
 
아울러 세븐일레븐과 롯데정보통신, 롯데리아 등 우량계열사의 상장 작업 추진도 롯데 측은 밝혔다.
 
◆ 결국엔 호텔롯데 상장이 핵심
 
이중 핵심은 단연 호텔롯데 상장 재추진에 있다. 호텔롯데는 한국 롯데의 지주회사라 할 수 있으며. 일본 롯데의 한국 롯데그룹 지배 통로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해 형인 신동주 전 부회장과의 경영권 분쟁(형제의 난) 이후, 호텔롯데 상장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바 있다. 이는 일본 롯데 영향력에서 벗어나 ‘롯데=일본기업’이라는 인식을 불식시키는 것과 함께, 한국 롯데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이 있다.
 
또 롯데그룹은 호텔롯데를 정점으로 롯데쇼핑과 롯데제과 등 67개 계열사간 순환출자 고리로 얽혀 있다. 순환출자란 한 그룹 안에서 A기업이 B기업에, B기업이 C기업에, C기업이 다시 A기업에 출자하는 식으로 그룹 계열사들끼리 돌려가며 자본을 늘리는 재벌그룹들이 항상 쓰는 방식이다.
 
롯데는 지난해 416개 계열사의 순환출자를 67개까지 끊어냈지만 아직도 복잡하다. 롯데그룹은 여전히 순환출자고리가 대기업집단 중에서 가장 많다. 호텔롯데 상장을 통해서 일본 롯데와의 지배력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 신동빈 회장이 발표한 쇄신안 중에는 결국 호텔롯데 상장이 핵심이다. 호텔롯데 상장을 통해서 일본 롯데와의 지배력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뉴시스
하지만 신 회장은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만큼, 호텔롯데 상장은 확실치 않다. 상장 규정상 분식회계나 배임·횡령 등의 혐의가 드러나면 3년간 상장이 불가능하다. 신동빈 회장 등 총수일가에 대한 첫 재판은 내달 15일 열릴 예정이다.
 
한편, 형인 신동주 전 부회장(SDJ코퍼레이션 회장)은 동생과의 경영권 분쟁 지속 의지를 밝히고 있다. 26일 SDJ코퍼레이션의 홍보대행을 맡은 홍순언 에그피알 대표는 "아직 신동빈 회장의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며 "재판 결과를 장담하지 못하는 만큼 경영권 분쟁을 지속할 것"이라고 전했다. 만약 신동빈 회장이 유죄가 확정될시, 롯데 경영권을 상실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동주 전 부회장도 ‘500억대 공짜급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만큼, 동생보다 사정이 결코 좋다고만은 할 수 없는 상황이다.
 
◆ 아직 ‘모호’한 공약들, 명확한 로드맵과 실천부터
 
준법경영위원회 설립이나 정책본부 축소는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신동빈 회장의 직속으로 설립될 준법경영위원회는 외부에서 영입한 법률 전문가들이 참여할 예정이며, 막강한 힘을 발휘할 전망이다. 반면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정책본부의 기능을 축소시켜서, 계열사 지원 업무로 전환한다. 이를 통해 각 계열사 경영인이 책임경영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향후 어떤 전문가들이 영입될지 지켜볼 일이다.
 
양적 성장(2020년까지 매출 200조원 달성, 아시아 톱10 그룹 도약)에서 사회와 산업생태계를 고려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한다고도 밝혔는데, 이는 사실 막연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이에 대해 “조직내로는 직원들의 복지와 기대치를 향상시키고, 외부적으로는 협력업체를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의 기대치를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또 향후 5년간 40조원을 투자하고 7만명을 신규채용하고 1만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는데, 이는 보통 재벌 총수들이 비리 혐의로 기소되거나 형기를 마친 뒤 ‘사회 공헌을 강화하겠다’며 립서비스 차원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말만 하고 흐지부지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다. 이는 롯데그룹이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고 공약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야 신뢰를 얻을 수가 있다.
 
롯데가 각종 비리의혹이나 정경유착 논란 등 ‘낙인’을 벗으려면, 입으로만 하는 공약 발표를 넘어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하겠다’는 의지와 실천을 확실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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