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질타에 당내에서도 당론화엔 ‘온도차’

▲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 회의실에서 홍준표 당 대표 주재 최고위원회의가 열렸다. 홍 대표는 이 자리에서 자당의 담뱃세 인하를 비판하는 여당을 향해 반박하며 맞대응에 나섰지만 정우택 원내대표(좌측)는 적극적인 홍 대표와는 온도차를 보였다. ⓒ자유한국당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자유한국당이 ‘서민 감세’의 일환으로 제안했던 담뱃세 인하안을 놓고 내부적으로도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추경 처리 이후 정부여당에서 이른바 ‘부자 증세’를 본격화하자 세금폭탄이라며 맹공을 퍼붓던 한국당에선 돌연 서민감세라며 자당의 대선후보였던 홍준표 대표가 지난 대선공약으로 내놨던 담뱃세와 유류세 인하 정책으로 맞서는 듯했으나 도리어 이전 박근혜 정권에서 담뱃값 인상을 주도했던 정당이라는 ‘원죄’ 때문인지 정치권과 여론의 지탄을 받게 되자 지도부 내에서도 일부 기류가 달라진 모양새다.
 
◆ 한국당, ‘담뱃세 인하’ 추진하자 당내외서 맹폭
 
자유한국당이 담뱃값을 4500원에서 2500원으로 인하하는 담뱃세 인하 법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지난 2014년 국민건강을 이유로 ‘지방세법’과 ‘국민건강증진법’을 일부 개정해 곧바로 다음해부터 2000원 인상시켰던 주역이 바로 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었던 만큼 이런 방침을 밝히자마자 정치권으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고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제 와서 내리자는 발상은 자신들이 내세웠던 담뱃세 인상 명분이 모두 거짓말이었음을 실토하는 것”이라고 질타했고, 바른정당의 김세연 정책위의장도 같은 날 “한국당은 문재인 정부 흔들기 수단으로 감세안을 들고 나온 것 같다”며 “네티즌들이 정치가 장난이냐며 비아냥거리고 있다”고 한국당에 일침을 가했다.
 
심지어 한국당내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는데, 바른정당 탈당파 출신인 장제원 의원도 이날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서민들의 증세가 되고 있는 담배값 인하 문제는 더불어민주당이 주장해야 되는 문제”라면서 “자유한국당이 말할 입장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또 다른 바른정당 탈당파인 김성태 의원 역시 27일 보도자료를 통해 “박근혜 정부 시절 담뱃값을 일거에 2000원 인상하면서 담배소비량이 34%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명분으로 내세웠던 금연효과는 미미했고 담배 세수만 7조원에서 12조원으로 대폭 늘어나면서 결국 서민증세가 되고 말았다”며 “한국당이 담뱃값 인하를 추진하더라도 결자해지와 자기고백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고 소속정당에 직격탄을 날렸다.
 
다만 김 의원은 이날 윤한홍 의원을 대표로 해당 법안이 발의될 당시 공동발의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와 관련해 그는 “개인적으로 인상 당시에도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국민건강증진을 내세우면서 결국은 서민증세로 귀착된 잘못된 정책적 판단에 대해서는 지난 정권의 집권당 일원으로서 진솔한 자성과 반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담뱃값 인하 법안에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한국당, ‘담뱃세 인하’ 당론화에는 지도부도 온도차
 
하지만 당장 이날 법안 발의 직전까지만 해도 한국당 지도부 내에서조차 담배값 인하안에 대한 온도차가 분명하게 나타났는데, 당초 이를 유류세 인하와 함께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홍준표 대표는 2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담뱃세를 인상하려 할 때 그렇게 반대한 민주당이 인하에는 왜 반대하는지 참 아이러니”라며 “입만 열면 서민 얘기하는 민주당이 앞장서서 협조하도록 말씀드린다”고 논란 속에도 강행할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 이현재 정책위의장은 27일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지난 대선 때 홍준표 당시 후보가 서민들에게 많은 부담이 된다고 해서 담배값을 인하하겠다고 발표했고, 그 일환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라며 “당론으로 하느냐 안하느냐는 전체 의원들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아직 그 절차는 남아있지만 우리 당의 주요 정책 법안으로 추진 중”이라고 분명하게 못을 박았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또 이현재 정책위의장도 같은 날 오전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지난 대선 때 홍준표 당시 후보가 서민들에게 많은 부담이 된다고 해서 담배값을 인하하겠다고 발표했고, 그 일환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라며 “당론으로 하느냐 안하느냐는 전체 의원들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아직 그 절차는 남아있지만 우리 당의 주요 정책 법안으로 추진 중”이라고 분명하게 못을 박았다.
 
그러면서도 이 의장은 현 정부의 높은 지지율을 의식했는지 “(정부여당의) 증세에 대한 대항으로 이렇게 한다는 프레임으로는 안 봤으면 좋겠다”며 “이미 한달 전에 담뱃세 인하와 배기량 2000cc 미만 자동차에 대한 유류세 인하 추진을 발표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2주 내내 하락세를 띠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과 여당인 민주당 지지율 모두 27일 공개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적잖이 반등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문 대통령에 대해선 전주 대비 2.3%포인트 상승한 74.7%가 긍정적 평가를 내놓았으며 부정평가도 18.7%로 지난주보다 0.6%포인트 낮아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앞서 지난 24일 동 기관에서 발표됐던 문재인 정부의 대기업, 부자 증세 방침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통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는데, 당시 ‘매우 찬성’이 71.6%, ‘찬성하는 편’이 14%로 찬성 의견이 85.6%인데 반해 ‘매우 반대’는 4.1%, ‘반대하는 편’은 5.9%로 반대 여론이 전체의 10%에 그쳐 사실상 정부여당에서 내놓은 증세안이 힘을 받고 있는 것으로 풀이됐다.
 
그래선지 부자 증세 대상과 범위를 보다 확장하며 증세안을 적극 역설해 온 추 대표의 민주당 역시 전주 대비 0.9%포인트 하락하며 15.1%를 얻은 데 그친 한국당에 비해 지난주보다 4.3%포인트 상승하며 54.7%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자칫 깨질 뻔했던 과반 지지율을 공고히 이어갔다.
 
이처럼 정부여당의 부자 증세에 대한 여론의 호의적 반응을 의식했는지 정우택 원내대표는 사실상 ‘서민 감세’라며 당에서 내놓은 담뱃세 인하안에 대해 거리를 두는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는데, 이미 26일 “공약이긴 하지만 당 차원에서 법안을 내고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원내대표로서 당론으로 정해야 할 때는 여론조사를 통해서 국민들이 담뱃세 인하를 원하는지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하루 뒤인 27일엔 담배값 인하안에 대해 “현재로선 개별의원 발의로 발의된 것 아니냐”며 “만약 당론이라면 107명 전체 발의가 돼야 하지만 이건 그렇게 되지 않았다. 필요시 의원총회를 열어 의원들 의견을 물어보고 당론을 정해가는 것”이라고 좀 더 확고하게 선을 그었다.
 
특히 정 원내대표는 기자들로부터 지금 당 정책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받으며 당론화 여부에 대해 거듭 질문 받게 되자 “왜 지금 당론이냐 아니냐, 뭐가 그리 급해서 이걸 정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의원총회가 조만간 열릴 가능성은 없다. 이걸 단정해 의총을 하는 건 의미 없다”고 사실상 일축했다.
 
◆ 담배값 인하 시 부자증세 효과 상쇄…정부여당도 고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당초 계획된 대로 27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인 윤한홍 의원을 포함한 11명의 한국당 의원들은 지방세법 일부개정법률안, 국민건강증진법 일부개정법률안, 개별소비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는데, 대표발의자인 윤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담배가격 인상 목적인 흡연 감소는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서민 부담만 가중된 것”이라고 법안 발의 취지를 밝혔다.
 
그러면서 윤 의원은 “담배가격 환원시 감소되는 정부세수는 연평균 4조 8000억원으로 추정된다”며 “이는 곧 서민부담 경감과 국민 가처분소득 증가로 이어져 가계경제 개선과 소비 등 내수진작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층 상대로 걷으려는 3조8000억원 규모의 세수 확보 효과를 완전히 상쇄시켜버리는 세수 감소가 일어날 것으로 전망되는데 당장 여당인 민주당으로서도 과거 담뱃값 인상 당시 적극 반대했던 전력이 있어 한국당이 이날 ‘서민 감세’라며 끝내 발의한 이상 저지할 명분이 없는 실정이다.
 
▲ 2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2017년 세법개정 당정협의’에서 우원식 원내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고민 끝에 여당에선 과세 대상 중 반발이 클 법인세 인상에 대해선 더는 건드리지 않는 대신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을 좀 더 올리는 방안을 공식화했는데, 추 대표는 26일 과세표준 5억 초과 초고소득자에 대한 세율 인상 뿐 아니라 과세표준 3억~5억원 구간에 해당하는 이들에 대한 세율 인상도 이뤄져야 한다고 공언했으며 27일 세법개정 당정협의에선 야당과 협의한 결과 서민과 자영업자, 일자리를 늘리는 기업에 대해선 세제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결론지었다.
 
오히려 청와대에선 이렇게 여당에서 지나칠 정도로 앞서나가며 가속도를 붙이다가는 역풍이 불어닥치게 될 것을 우려해 단계적으로 국민 동의에 바탕을 둬야 한다며 제동을 걸고 나섰는데 27일 3~5억원 이상의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는 하지 않는다면서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그 덕분에 정부는 가장 피하고 싶은 증세 범위 확대 논란으로까지 비화되는 건 어떻게든 막았지만 바른정당 등 다른 야당에선 담뱃세 인하 법안을 발의한 한국당은 물론 부자 증세를 내세운 민주당 모두를 향해 조삼모사식 국민우롱이자 무책임한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고 있어 부자 증세와 서민 감세로 불붙은 이번 공방에서 어느 쪽이 결국 웃게 될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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