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세·소득세 인상 놓고 與 ‘명예과세’ - 野 ‘세금폭탄’ 공방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일 정부 각료들과 함께 2017 국가재정전략회의를 갖고 있다. ⓒ청와대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진통 끝에 추경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가자마자 이번엔 증세 문제를 놓고 정치권이 다시금 들끓고 있다.
 
증세 논란의 첫 방아쇠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겼었는데, 지난 20일 추 대표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과세표준 2000억원이 넘는 초대기업의 법인세율을 3%, 과세표준 5억원이 넘는 초고소득자의 소득세율을 2%포인트 각각 인상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러자 바로 다음 날인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이틀째 이어진 국가재정전략회의의 마무리 발언을 통해 “(증세를) 이제 확정해야 할 시기”라며 추 대표에 화답하듯 증세 드라이브를 걸고 나오면서 야권에서도 저마다 이에 맞서기 위한 목소리를 본격적으로 내기 시작하고 있다.
 
이후 불과 며칠 사이에 증세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오는 27일 별도의 당정협의를 열고 세법개정안에 대해 협의키로 해 야권 일각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증세가 강행될 것인지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與, 대기업·부자 증세는 ‘명예·사랑·존경과세’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 스스로 명예를 지키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명예과세라고 부르고 싶다”며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에 대한 과세는 조세 개혁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추 대표의 증세안은 순이익 2000억원을 초과하는 대기업에 한해 법인세율을 현행 22%에서 25%로 3%포인트 인상시키고 연간 5억원이 넘는 고소득자의 소득세율은 현행 40%에서 42%로 올린다는 구상인데, 당장 이 증세안에 해당되는 대상 기업은 약 116개 정도고 과세표준 5억원 초과 소득자는 근로소득세와 종합소득세, 양도소득세를 합해 약 4만여명으로 전체 소득세 납부 대상자 중 약 0.3% 정도가 적용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도 상위 1%가 법인세의 76%를 부담하고 있고, 우리나라 전체 세수에서 법인세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도 2015년 기준 12.8%로 OECD국가 중 칠레와 뉴질랜드에 이은 3위를 차지하고 있어 초대기업의 세수 부담 수준은 낮다고 하기 어려운 수준이며 소득세조차 상위 1%가 전체의 33%를 차지하고 있다 보니 일부 야당에선 포퓰리즘이라며 추 대표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를 의식했는지 추 대표는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법인세율이 미국 35%, 프랑스 33.3%, 벨기에 33% 등보다 10%p 이상 낮고 경제규모가 우리가 비슷한 호주·멕시코 30%, 네덜란드 25%, 이탈리아 27.5%와 비교해도 법인세율이 낮고 실효세율은 더 낮다”며 “이번 기회에 OECD 꼴찌 수준인 세후소득 재분배율을 바로잡는 것이 사회 양극화 극복의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증세 관련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특히 그는 증세에 가장 격하게 반발하는 자유한국당을 겨냥 “(증세에 대해) 자유한국당이 세금폭탄이라고 하는 건 본질을 모독하는 나쁜 선동정치”라며 “자유한국당 정권이 근로소득세, 담배세 인상으로 세금 부담을 서민에게 떠넘겼다는 점을 생각하면 후안무치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처럼 추 대표가 자신의 증세 제안을 ‘명예 과세’라며 전면으로 나서자 같은 당 김태년 정책위의장도 이날 최고위 직후 기자들과 만나 “초우량 대기업들이 세금을 조금 더 냄으로써 국민들로부터 대기업이 사랑을 받게 되면 그런 측면에서 대기업 법인세는 사랑과세가 될 것”이라며 초고소득자 소득세 증세에 대해서도 “부자들이 국민들로부터 존경 받을 수 있는 존경과세”라고 미화했다.
 
이 뿐 아니라 김 위의장은 “서민과 중산층에 대한 증세는 없다”고 선을 그은 뒤 “(야권에서) 프레임을 만들어서 정치문제화 하고 싶어 할텐데 이렇게 과세하는 것에 대해 국민들이 지지해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여론의 지지를 호소했다.
 
◆ 野, 증세 비난부터 대통령 사과 요구·공론화 협의체 제안 등 반응 제각각
 
반면 야권에선 4당 모두 온도차를 보이고 있는데, 가장 강도 높게 증세 추진을 비난하고 있는 최선봉은 일단 자유한국당으로 정우택 원내대표는 24일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세계 각국은 지금 경쟁적으로 법인세를 낮추고 또 기업투자를 유도하고 있다”며 “정부가 먼저 예산이 비효율적인 게 없는지 또는 지출 감축할 여러 가지 사항이 없는지를 충분히 검토하고 노력한 뒤에 증세하겠다는 정책을 내놔야 되는데 갑자기 지금 증세타령을 한다. 청개구리 정책”이라고 정부여당에 일침을 가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정 원내대표는 “국정 100대 과제라면서 선심성 포퓰리즘 공약을 발표했는데 처음엔 증세 없는 복지를 외치더니 갑자기 여당 대표를 시켜서 한 건지 모르겠지만 마치 짜고 치듯 여당에서 증세론을 들고 나오는 지금 상황”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좌파 포퓰리즘 공약을 위해 세금 인상으로 부담을 전가하는 이런 증세에 대해선 현재로선 동의할 수 없다. 이것은 시대착오적 좌표 이탈”이라고 맹비난했다.
 
또 그는 소위 ‘부자 증세’의 규모와 효과에 대해서도 “부자 증세라고 자기들이 표현한 바에 의해도 제 생각에는 한 4조 남짓밖엔 아마 증세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이 사람들이 (10대 국정과제를 위해) 요구하는 게 178조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돈이 필요하다고 지금 얘기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정 원내대표는 같은 날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선 아예 “여당 대표를 시켜 바람을 잡게 하더니 곧바로 증세 논의를 시작했다”며 “가공할 세금폭탄 정책이 초고소득자, 대형기업에 한정돼 있지만 앞으로 어디까지 연장될지는 예언할 수 없다”고 강조해 과세 대상이 점차 확대되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을 부추겼다.
 
▲ [시사포커스 오훈 기자]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바른정당 최고위원회의가 24일 오전 국회 바른정당 회의실에서 열렸다.

바른정당 역시 이혜훈 대표가 같은 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정부여당의 증세 추진 조짐에 맞서 “대선기간 문 대통령이 말한 재원소요는 엉터리였다는 점을 사과해야 한다”며 “정부는 공약에 드는 돈을 국민에게 솔직히 밝히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국민에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고 증세 없다던 입장을 번복한 데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
 
이 대표 외에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도 “일은 정부여당이 벌려놓고 돈 만드는 것은 여당과 정부가 짜고, 국회보고 손을 벌리라고 한다”며 “바른정당은 국회에서 (증세) 논의가 시작되면 이번 추경 때처럼 쉽게 넘어가지 않고 단단히 따지겠다”고 대립각을 세워 세법개정안 통과는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달리 국민의당에선 증세 필요성엔 공감하면서도 반드시 제대로 절차를 밟고 공론화를 거쳐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 정부여당을 압박했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24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에서 “증세는 국민 호주머니와 지갑에 직접 관련되는 중차대한 사항임에도 국민적 공감대나 야당과의 합의는 없었다”며 “증세는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하고 그 과정에서 국민적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특히 김 원내대표는 “불과 일주일 전에 명목세율 인상은 없다던 경제수장의 발언은 뭐냐”며 “국민 고통의 길로 치닫는 것 같아 매우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는데, 그러면서도 그는 “재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국민적 복지 수요는 갈수록 증가하고, 소득 격차와 양극화가 심화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증세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어느 정도 증세 필요성에 대해선 인정했다.
 
같은 당 박주선 비대위원장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정부는 반드시 (증세에) 사회적 공론화와 합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먼저 국정 100대 과제 추진의 세부 재원조달 계획을 국민 앞에 소상히 밝히고 증세 대상과 범위에 대해 심도 깊은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칠 것을 요구한다”고 정부여당에 촉구했다.
 
유독 공론화와 소통을 부각시켰기 때문인지 국민의당에선 정부의 법인세·소득세 증세에 대응하기 위한 내부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물론 모든 정당들이 함께 참여하는 협의체를 만드는 방식까지 논의하고 있는데, 최명길 원내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의 의총 직후 기자들과 만나 “어떤 복지정책이라든지 공무원 증원이라든지 굉장히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건데 국가 재정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냐를 같이 논의하자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그나마 야권 중 가장 문재인 정부에 협조적인 정의당에선 이른바 ‘부자 증세’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면서도 협의체를 제안한 국민의당보다 범위가 더 넓은 증세 관련 특위를 구성해 여야정 외에 노사와 시민단체까지 참여시키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정치권에서 제각각 백가쟁명 하듯 입장을 내놓는 가운데 이날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한 대기업·부자 증세에 대한 국민 여론은 85.6%가 찬성하고 반대는 10%에 그칠 정도로 일단 호의적 시선이 많다는 점에서 야권의 반대만 넘어서는 게 정부여당으로선 유일한 과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같은 기관이 조사해 이날 발표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지지도가 모두 2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고 ‘부자 증세’가 발표된 지난 21일 민주당 지지율이 50% 아래로 떨어졌다는 점에 비쳐 증세 문제가 자칫 정부여당의 지지율 하락을 한층 가속시킬 자충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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