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법 자구해석 수준의 거부이유...‘국가비상사태’? 정치적 해석과 결단했어야

▲ 특검 수사기간 연장승인을 대통령 권한대행인 황교안 총리가 계속 미루면서 가능성은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수사기간을 50일 연장하고, 국회의장이 이를 승인하는 내용의 특검법 개정안(특검 연장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이마져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권성동 위원장과 김진태 자유한국당 간사가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일한 방법은 정세균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었다. 사진 / 시사포커스 DB
[시사포커스 / 오종호 기자] 특검 수사기간 연장승인을 대통령 권한대행인 황교안 총리가 계속 미루면서 가능성은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수사기간을 50일 연장하고, 국회의장이 이를 승인하는 내용의 특검법 개정안(특검 연장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이마져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권성동 위원장과 김진태 자유한국당 간사가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일한 방법은 정세균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었다.
 
정세균 의장은 그러나 직권상정은 불가능하다며 본회의 날인 23일을 넘겼다. 박근혜 정부와 자유한국당의 도움 없이 처리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인 직권상정은 그렇게 불발됐다.
 
 
◆특검 수사기간 연장위한 특검법 개정안 자유당 반대로 법사위 상정무산
21일 법제사법위원회는 자유당의 버티기로 끝내 특검법 개정안을 처리하지 못했다. 법제사업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린 21일 권성동 위원장은 “역대 모든 특검법은 여야 원내대표의 합의로 이뤄졌다. 이번 특검 연장 법안도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 또는 여야 법사위 간사 간 합의가 필요하다”면서 특검연장안을 상정하지 않았다. 이에 반발한 민주당 의원들은 집단 퇴장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황교안 권한 대행이 오는 28일까지 시간을 끌다가 불승인하면 법을 개정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며 “오늘 법사위에서 상정해 처리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했지만 소용없었다.
 
자유한국당 법사위 간사 김진태 의원은 “"태생부터 편파적인 특검은 이제 그만하면 됐다. 도대체 뭘 더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며 “특검이 그 많은 불법을 자행했다. 마구 수사하고, 밤샘 수사하고, 삼족을 멸한다느니 폭언을 하고 가혹 행위를 했다. 고영태의 국정 농단도 녹음파일로 드러난 상황"이라고 특검을 비난하면서 전체회의 무산을 반기는듯했다.
 
법사위 불발로 남은 방법은 국회의장 직권상정인데, 정세균 의장은 난색을 표했다. 정 의장은 21일 오후 기자들과 만나 “교섭단체들이 합의하면 언제든지 직권 상정할 수 있다. 합의가 안 되면 국회법에 나와 있지 않은데 내가 직권 상정할 수가 없지 않느냐. 법 위에 있는 게 아니라, 국회법 절차에 따라 의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며 지금이 '비상 상황'이라는 의견에도 동의하지 않아 직권상정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본회의 전날, 유일한 법 처리 방법인 직권상정 요구 빗발쳐 “지금이 비상사태”
하지만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 유일한 방법으로 남은 상황에서 야당은 물론 시민사회단체도 정 의장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추미애 민주당·박지원 국민의당·정병국 바른정당·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21일 오후 회동을 갖고 “황교안 권한대행이 특검의 수사 기간 연장 요청에 대한 입장을 오늘까지 명확히 밝히라”면서 “황 권한대행이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면 국회는 국민의 절대적 요구에 따라 특검법 개정안을 23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고 직권상정을 예고했다.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도 “국회에서 특검법안을 직권상정해서라도 반드시 연장해야 한다”고 밝혔으며, 이재명 성남시장은 “황 권한대행이 연장을 거부하면 국회는 황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에 착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2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어제 우연한 모임에서 정세균 의장을 밤에 만났다. 의장께 간곡히 설명을 드렸지만 의장은 4당이 합의를 해오거나 그렇지 않고는 직권상정에 난색을 표시했다”며 “그래서 ‘이거는 국가 비상사태에 준하는 사태이다, 지금 현재 대통령이 유고인 상태인데 이러한 것을 가지고 다수의 3분의 2가 넘는 의석의 국회의원들이 요구를 하는데 자유한국당의 반대, 여당의 반대 하나를 가지고 이러한 법을 통과시키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이 자체가 비상시국 아닌가’ 이런 말씀을 했다"고 밝히며 직권상정을 재차 요청했다.
 
21일 정세균 의장을 면담하고도 별다른 답을 듣지 못했던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공동대표 : 박석운, 정강자, 최종진)은 21일 성명을 통해 정 의장에게 “국회법상의 정상적인 처리절차에만 집착해 헌정유린의 범죄행각에 대한 수사와 처벌을 접게 만들 것인지, 아니면 국회법상의 비상한 처리절차를 통해 국민의 염원에 부응할 것인지 역사적인 결단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이어 “과거의 범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미래의 범죄를 조장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것은 역사에 대한 죄악이다”라며 “국민과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는 비상한 결단을 촉구한다”고 호소에 가까운 요청을 했다.
 
▲ 직권상정을 할 수 있는 본회의 하루 전 22일 시민사회 단체들은 “부디 온나라 촛불의 염원을 존중 결단하시어, 작금의 국가비상사태를 조속히 수습할 수 있도록 특검법개정안을 직권상정해주시길 앙망합니다”라고 거의 읍소를 했다. ⓒ민주실현주권자회의
민주실현주권자회의(공동대표 : 박흥규, 연도흠, 이기묘, 임태환, 정영훈, 정현덕, 허인회)도 ‘정세균 의장님, 특검법개정안을 직권상정해 주십시오!’라는 성명을 내고 “정의화가 테러방지법 직권상정할 때 야권이 합의해줘서 직권상정했나요? 지금보다 더한 비상사태라 직권상정했나요?”라며 “부디 온나라 촛불의 염원을 존중 결단하시어, 작금의 국가비상사태를 조속히 수습할 수 있도록 특검법개정안을 직권상정해주시길 앙망합니다”라고 거의 읍소를 했다.
 
 
 
◆본회의 당일, 야당 원내대표들 설득에도 정 의장 “내 의지로 풀기 어렵다”직권상정 거부
국회 본회의 날인 23일 오전 급기야 야4당 원대대표들이 나서 정 의장을 방문하려했으나, 정 의장의 권유로 교섭단체 4당 원내대표가 모인자리에서 야당 원내대표들은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현재가 비상사태’라며 직권상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 의장은 흔들림이 없었다.
 
의장실 관계자는 “특검 연장 여론이 70%를 넘지만 그것이 국회법을 어겨가면서 하라는 것은 아니란 것에 의장의 고민이 있다. 아직 황 권한대행의 선택이 남아 있고 소관 상임위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풀 여지도 있다”고 전했다.
 
정 의장은 회동 후 페이스북에 “입법기관인 국회는 그 어느 기관보다 법의 원칙과 절차의 정당성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 결론적으로 여야 합의가 없는 한 국회의장의 의지만으로 문제를 풀어가기 어려운 현실”이라며 “현재 특검 연장의 열쇠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있다. 지금 우리 국민의 70% 이상이 특검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은 대통령이 아닌 국민의 명령에 따라야 할 때”라며 자신이 아닌 황교안 총리의 결단을 요구했다.
 
그리고 정 의장은 황 총리에게 직접 전화까지 했다. 그는 통화에서 “특검 수사기간이 연장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황 권한대행이 잘 판단해달라”고 당부했으나 “관련법에 따라 면밀하게 검토하고 있다”라는 답만 들었다고 한다.
 
정 의장은 직권상정을 하지 않았고, 황 총리는 연장승인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국회 본회의 날이 지나면서 야권에서는 정 의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네티즌들은 더 거칠었다.
 
 
◆심상정 “정 의장, 정치적 평판만 챙기고 역사적인 특검은 내팽개쳐”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24일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 인터뷰에서 “현재 국회선진화법으로 볼 때 현행법 테두리 내에서 수사기간연장법을 통과시키려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밖에 없다. 그런데 국회의장께선 여야 합의가 안 되면 못하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면서 “심정적으론 이해는 가지만, 너무 엄중한 시기에 정세균 의장님과 민주당 지도부가 정치적 평판만 챙기고 역사적인 특검을 내팽개쳤단 그런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주승용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24일 “특검을 지켜내기 위해 교섭단체 원내대표들에게 국회의장 항의방문을 제안했고, 어제 국회의장과 면담을 가졌으나 특검법 직권상정은 불발됐다”며 ‘특검기간 연장’을 촉구하면서 다음 본회의인 3월 2일까지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겠다고 밝혔다.
 
김명환 서울대 교수는 ‘경향신문’ 24일자 칼럼에서 “(지금은) 국가의 안위를 위협하는 비상사태이며 이에 대응할 특검 연장 법안은 당연히 국회의장 직권상정 요건에 해당한다”며 “따라서 국회의장은 심사기일을 지정해서 직권으로라도 28일 본회의를 소집해야 한다”고 재 직권상정을 요구했다.
 
▲ 유명 트위터리안 김빙삼(金氷三)은 정 의장을 향해 “한 밤중에 술 쳐먹은 28톤 트럭 운전자가 역주행으로 정면에서 달려오는데, 원칙을 지켜서 차선을 넘지 않고 그대로 정면으로 달려가는 꼴이라고나 할까”라고 일침을 가했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SNS에서는 “국가비상사태니 직권상정하세요. 그렇지 않음 역사의 죄인이 될 겁니다” “직권상정 해주세요! 역사의 바퀴는 계속 굴러가야 합니다” “직권상정 안 하는 이상 영원히 박근혜 게이트의 조력자로 남게 됩니다” “황교안이 거부권을 행사하든 말든 일단 직권상정해서 통과시키는 의지라도 보여라” “직권상정 안하면 역적 된다” 등 직권상정을 요구하는 글이 이어졌다.
 
유명 트위터리안 김빙삼(金氷三)은 “자유당은 주범 내지 공범인데 어째서 직권상정을 위한 합의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쪼매 이상하네. 그런 식이면 특검과 최순실이 서로 합의하지 않은 범죄 사실도 인정할 수 없다는 뭐 그런 긴가?”라고 비꼬면서 정 의장을 향해 “한 밤중에 술 쳐먹은 28톤 트럭 운전자가 역주행으로 정면에서 달려오는데, 원칙을 지켜서 차선을 넘지 않고 그대로 정면으로 달려가는 꼴이라고나 할까”라고 일침을 가했다.
 
정세균 의장이 거부고, 야당과 시민단체, 네티즌 등이 요구한 직권상정의 쟁점은 ‘비상사태’에 대한 인식과 해석이다. 지난해 초 192시간 25분으로 세계기록을 경신한 19대 국회에서의 ‘필리버스터’도 당시 정의화 의장이 ‘국가비상사태’를 이유로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하면서 이를 저지하려던 야당이 시도한 방법이었다. 정의화 의장은 당시를 비상사태라고 자의로 해석하고 직권상정을 한 것이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 정치적인 결단을 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국가비상사태’라고 규정해도 2016년 초에 비하면 거의 반발이 없을 ‘대통령 유고상태’인 이 상황을 정세균 의장은 비상사태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국회법에 대한 자구해석만을 하면서 직권상정은 자의가 아니라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둘러댔다. 입법기관의 수장이 자구해석만하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그것은 사법부 초임판사나 할 일이다. 사법부라해도 대법원, 헌법재판소 쯤 되면 정치적인 고려를 한다. ‘비상사태’에 대한 해석은 정 의장이 정치적으로 판단해야할 사안이다. 그런데 그는 소극적으로 해석했다. 정치적으로는 아무런 결단을하지 않았다.
 
국회의장은 ‘기계적인 회의 진행자’가 아니다. 민의를 바탕으로 고도의 정치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지난해 6월 20대 국회 개원협상 때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가 법제사법위원회와 운영위원회를 새누리당에 내주고 온갖 욕을 먹으면서도 확보해 낸 자리가 20내 전반기 국회의장 자리다. 그때 내어준 법사위가 아쉽지 않게 정 의장은 역사의 고비에서는 역사적인, 최소한 정치적인 결단이 있기 바란다. ‘백봉상 신사의 손에는 물도 묻히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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