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이익이냐, 사익추구냐가 판단기준...뇌물죄 적용여부가 관건

▲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하여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강요미수, 사기미수, 공무상 기밀누설 범죄의 공범이라고 밝혔으나 이런 혐의가 ‘통치행위’에 해당되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청와대
[시사포커스 / 오종호 기자] 국정농단 사태를 빚고 검찰과 특검의 조사를 받고 국회의 탄핵발의를 앞 둔 지금 박근혜 대통령의 혐의가 통치행위로 해석될 수 있을까?
 
통치행위에 대해 법학계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대통령의 통치행위는 국가최고기관의 행위로서 입법, 사법, 행정의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 국가작용이며 법적판단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고도(高度)의 정치성 (政治性)' 때문에 법치행정의 원칙, 사법심사 대상에서 제외하는 행위이다.(통치행위의 의의)
 
통치행위에 대한 사법심사로 인해 국가적 혼란,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게 되거나 사법부가 정치적 문제에 개입함으로써 사법의 정치화로 말미암아 그 독립적 지위를 위협 당할 우려가 있을 경우에는 사법부가 그에 대한 사법적 심사권을 스스로 포기하고 조그만 해악은 감수할 수 밖에 없다고 하는 법정책적 고려에서 사법권의 자제가 바람직하다.(통치행위 긍정설)
 
모든 국가작용은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하고,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법치주의 원칙과
행정소송사항에 관하여 개괄주의(헌법 제107조 제2항, 행정소송법 제1조)가 인정되는 이
상 사법심사에서 제외되는 통치행위라는 관념은 인정될 수 없다.(통치행위 부정설 / 이상 ‘신월행정법총론’ 중 행정과 통치행위에서)
 
통치행위는 결국 정치문제이고 정치문제는 행정부의 자유재량 행위에 속하므로 사법적 심사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이고 3권력분립의 원칙상 통치행위에 대한 사법기관의 관여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인정하는 법적 기준은 국가이익에 부합하느냐의 여부를 정치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위한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지원, 국익일까? 사익일까?
그렇다면, 박 대통령의 혐의는 국가이익에 부합할까? 반할까?
박 대통령은 혐의가 집중되고 있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대해 국가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스스로 해명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10월 2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저는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핵심 두 축으로 설정해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고, 그것은 전 세계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며 “과거 산업화시대처럼 관 주도로 모든 것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제는 민간이 앞장서고 정부는 지원하는 방식으로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의 두 축을 이끌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한 바 있다.
 
또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한류를 통해 코리아를 친근하게 알아가고 한류가 우리나라 수출효자 종목으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문화의 산업화를 통한 미래성장동력 확충은 매우 중요하다”면서 “기업들도 문화가 갖고 있는 세계시장의 경제적 가치에 주목했고, 이를 통해 대한민국과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게 기업의 세계시장 진출에도 도움이 되며 기업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봤다”고 했다.
 
그래서 “정부도 순방 때마다 세계 각국에 우리 문화를 소개해왔고,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며 “이에 외국순방 때마다 경제사절단으로 함께 한 여러 기업들과 그동안 창조경제를 함께 추진해온 기업들이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 기업과 국가 경쟁력을 높여나가고자 뜻을 같이 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국가이익을 위한 사업이었고 정부만으로는 부족하니 민간이 주도할 수 있도록 했고, 민간기업이 이에 호응했다는 것이다.
▲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하여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강요미수, 사기미수, 공무상 기밀누설 범죄의 공범이라고 밝혔으나 이런 혐의가 ‘통치행위’에 해당되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 / 고경수 기자
박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대한 논란은 이전에도 있었다.
개성공단 폐쇄와 관련해 통치행위라는 주장과 반론이 정치권에서 오갔었다.
 
올해 초 황교안 국무총리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번 결정은 긴급명령으로 한 게 아니라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행위에 따른 것"이라며 "다른 법을 이 행위에 적용할 수 없다"고 말하며 ‘통치행위’를 주장했다. 그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인정하는 게 고도의 정치행위에 관한 법리”라며 대통령의 통치행위는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의 판단범위에 속하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이 사안은 사법처리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송금, 대통령은 ‘통치행위’ 대북특사 박지원은 구속
통치행위와 관련해 가장 유명한 사례는 김대중 정부의 대북송금문제였다.
2003년 초 노무현 당선자로의 정권이양을 앞 둔 상황에서 불거진 현대상선의 대북지원설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은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키고 장차의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남북관계의 특수한 처지는 통치권자인 제게 수많은 어려운 결단을 요구해왔다”고하면서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현대상선의 일부 자금이 남북 경제협력 사업에 사용된 것이라면 향후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국가의 장래 이익을 위해서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게 나의 견해”라면서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통치행위의 범위’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결국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대북송금 특검’으로 이어졌고, 김대중 정부 당시 대북 특사 역할을 했던 박지원 전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이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김 대통령은 어떠한 법적처분을 받지 않았으므로 통치행위로 인정됐다고 볼 수 있다.
 
동일사안에 대해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인정하면서도 실행책임자인 박 장관을 처분한 것을 법조계에서는 가분이론으로 설명한다.
가분이론으로 “통치행위 자체는 처벌할 수 없음을 별론으로 하고 통치행위를 수행함에 있어 개별적으로 행하는 행위는 통치행위로부터 분리되어 처벌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그 예로는 계엄령선포행위(통치행위) 후에 행한 계엄령확대 행위, 대북정상회담 개최(통치행위)와 그와 관련된 대북송금 등이 있다”고 법학교재(신월행정법총론)는 설명하고 있다. 만약 박 대통령에게 통치이론이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최순실 씨등 그밖의 공범 내지 종범들은 사법대상이 되는 것이다.
 
통치행위로 헌재가 인정한 첫 사례,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
대통령의 통치행위로 공적기관이 명확히 인정한 첫 번째 사례는 노무현 전 대통령 때이다.
2004년 노 전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는데, 이에 대해 위헌소원이 헌법재판소에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헌재는 “파병결정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 및 이라크 전쟁이 침략전쟁인지 여부 등에 대한 판단은 대의기관인 대통령과 국회의 몫이고 성질상 한정된 자료만을 가지고 있는 헌법재판소가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현행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대의민주제 통치구조하에서 대의기관인 대통령과 국회가 내린 파병과 같은 고도의 정치적 결단은 가급적 존중되어야 한다”고 위헌각하 판결을 했다.
 
당시 헌재는 “파병결정은 그 성격상 국방 및 외교에 관련된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요하는 문제로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한 이상 우리 재판소가 사법적 기준만으로 이를 심판하는 것은 자제되어야 한다”고 덧붙여 ‘국방 및 외교’에 관련된 사항은 사법적인 심판범위 밖에 있는 ‘통치행위’라는 것을 인정했다.
 
박영수 특검 “문화융성을 명분으로 통치행위라 할 텐데 그걸 어떻게 깨는가가 관건”
검찰은 11월 20일 국정농단 사태에 관련된 최순실 씨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을 일괄기소 했다. 또 이들 3명의 혐의인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강요미수, 사기미수, 공무상 기밀누설 등과 관련해 "박 대통령은 이들의 범죄행위 상당 부분에 공모 관계가 있다"며 박 대통령도 공범이라고 판단했다.
▲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하여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강요미수, 사기미수, 공무상 기밀누설 범죄의 공범이라고 밝혔으나 이런 혐의가 ‘통치행위’에 해당되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박 대통령의 범죄혐의와 관련해 쟁점으로 떠오르는 ‘3자 뇌물 공여죄(뇌물죄와 동일)’는 국회의 대통령탄핵발의안에 공소내용으로 적시되어 있으며, 박영수 특검도 이 부분에 대한 입증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 특검은 2일 기자들과 만나 "(박근혜 대통령이) 문화융성이라는 명분으로 통치 행위를 (했다고) 내세울 텐데 그걸 어떻게 깰 것인가가 관건"이라며 통치행위논리를 무력화하기 위해서는 뇌물죄의 입증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박 대통령이 문화육성 차원에서 도와주라고 경제수석에게 얘기했다고 혐의를 부인하면 어렵게 된다. 또 최순실이 중간에서 개입한 사실을 자신은 몰랐다고 할 것이기 때문에 명확한 증거가 필요하다”며 “그러나 피의자들이 서로 입만 맞추면 밝혀질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검찰이 콕 집어서 뇌물죄를 적용할만한 것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라며 수사의 어려움도 토로했다.
 
결국 정리를 하자면, 최순실 씨를 비롯한 온갖 국정농단 사범들이 처벌 받는다 해도,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모든 행위가 ‘통치행위’임을 입증한다면 사법처리를 면할 수 있다.
그 기준은 앞에서 말한 대로 국가이익이냐 사익이냐를 판단하는데 있고 이는 결국 뇌물죄의 적용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게 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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