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규모 얼마나 될지 추산도 안 돼, 서로 책임 미루는 핑퐁게임만

▲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지 한 달째다. 그러나 아직 하역작업도 완료되지 못하는 등, 급한 불도 아직 끄지 못해 사태 수습이 요원하다. 피해가 얼마나 커질지 추산이 안 될 정도다. ⓒ뉴시스
[시사포커스 / 고승은 기자]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돌입한지 한 달로 접어들지만, 여전히 해결될지 미지수다. 정부와 금융당국, 오너 등은 아직 별다른 대책도 내놓고 있지 않다. 사태가 예견됐음에도 예방하지 못한 것은 물론 수습 방안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당장 수출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향후 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 될지 추산이 안 된다. 한진해운이 지난 수십년 간 쌓아온 물류망이 모두 무너져, 수출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거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내수도 가뜩이나 안 좋은데 수출망마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다. 한국의 대외신인도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힐 것이다.

또 관련업체의 줄도산 및 대량해고, 지역경제 붕괴 등 피해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은 뻔한 일이다. 이것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지 의심될 정도다.
 
한진해운의 선원들과 노동자들의 탄식도 깊어지고 있다. 세계 각국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한진해운의 선박 입항을 거부함에 따라, 일부 선원들은 한 달이 되도록 해상에서 표류하고 있는 상태다. 열심히 일한 직원들이 실직 위기에 처해있는 상태다.
 
한편,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외국선사들이 빈자리에 들어와 어부지리로 이익을 높이고 있다. 한진해운 배를 이용하던 화주들이 다른 배를 이용하기 위해 타국 선사들과 협의하면서 운임이 기존보다 2배까지 치솟기도 했다.
 
◆ 시간 지연되며 ‘급한 불 끄기’도 어려워져
 
30일 한진해운 관계자에 따르면, 한진해운이 현재 운용 중인 컨테이너선 97척 중 절반이 조금 넘는 52척(29일 오후 기준)이 하역을 완료한 상태로 현재 45척이 하역대기 중이다. 또 현재까지 선박압류금지를 위해 신청한 '스테이오더'를 받아들인 국가는 미국과 영국, 일본, 독일 등 4개국이며, 호주와 싱가폴에서는 임시적으로 승인된 상태다.
 
한진해운 선박에 실린 화물들을 하역하는데 필요한 것으로 추산되는 돈은 약 1700억원이었다. 현재 대한항공 이사회가 600억원, 채권단인 산업은행이 500억원을 지원하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현 유수홀딩스 회장)이 사재 400억과 100억씩을 출연한 상태로 당초 추산됐던 금액은 대략 마련된 상태다.
 
그러나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후 용선료(배를 빌린 비용)와 연료비 등으로 하루 210만달러(약 23억)씩 증가한 만큼, 최소 수백억원의 자금이 더 소요될 전망이라 급한 불끄기도 쉽지 않다.
 
물론 전체 사태를 해결하는 데는 갈 길이 너무 멀다.
 
한진해운 선박에 실린 전체 화물가액이 140억대(약 15조5천억원)로 추산됨에 따라, 운송시점이 한 달 정도 지연된 만큼, 화물주들이 한진해운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경우 지급해야 할 금액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 확실시된다. 배상액은 최소 1조원, 많으면 3~4조원대가 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 ‘무책임’ 정부, 뻔한 말만 되풀이
 
심각한 사태에도 정부당국의 별다른 대책은 찾아볼 수 없다. 수습책에 몰두하기보다는 한진해운과 대주주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며 때리기에 나섰다. 지금도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한진해운의 추락하는 주가만 봐도 법정관리행은 일찌감치 예고된 상태였다. 한진해운은 국내 1위, 세계 7위의 선대를 보유한 컨테이너 선사인 만큼, 법정관리행에 들어간다면 후폭풍이 엄청날 것임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 유일호 경제부총리나 임종룡 금융위원장 등은 사태가 터진지 한달이 되도록 아직도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사진/원명국 기자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8일 서별관회의 청문회(조선·해운 산업 구조조정 연석 청문회)에서 "한진해운 구조조정에서 앞으로 돈이 얼마나 더 들어가느냐, 물류산업에 어떤 영향이 있을 것이냐에 대해 고민을 했고 이 문제는 해수부와 6월부터 시나리오를 갖고 협의를 해왔다"며 금융당국이 손 놓고 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전, 한진해운에 여러 차례에 걸쳐 대비책을 세워달라고 했지만 한진해운으로부터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고 책임을 회피했다.
 
지난 21일에는 "한진그룹이 마련하기로 한 재원을 토대로 하역에 필요한 일들이 빨리 마무리됐으면 한다"면서 거듭 한진해운을 압박했다.
 
한국의 경제수장인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한진해운 정상화 위해 총력 다하겠다” “물류대란 다음달까진 해결될 것”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어떻게 구체적으로 하겠다는 발언은 찾아볼 수가 없다.
 
유 부총리는 지난 2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진해운 법정관리로 물류망 복원이 힘들어지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에 대해 “채권단이 한진해운에 6000억원을 지원하면 그것도 국민의 세금이고 또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살리기에는 국민의 혈세가 너무 많이 들어간다”며 물류대란 해소에 필요한 최소한의 하역료 외에는 지원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김영석 해수부장관은 지난 27일 해수부 국정감사에서 “한진해운발 물류대란 사태를 인지하고 있었으며, 당시 공적자금을 투입해서라도 한진해운을 살려야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금융당국을 제대로 설득한 것인지는 의문이며, 대국민 상대로 공개적으로 발언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잇따르는 ‘선 수습, 후 책임 추궁’론
 
물론 한진해운 사태의 책임에 선 긋고 변명으로 일관하는 최은영 전 회장도 문제다. 그가 회장으로 있을 당시 한진해운의 부채비율이 10배 이상 폭증한 만큼, 부실 경영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음에도 책임회피를 하는 태도를 보여 여론의 거센 질타를 받고 있다.
 
또 한진해운을 조양호 회장에 넘기면서 한진해운의 알짜배기 자회사를 계열분리해 유수홀딩스라는 회사를 차렸고, 퇴직금으로도 수십억을 챙기는 등 도덕성 논란에도 휩싸여 있다. 현재 유수홀딩스는 서울 여의도 소재 한진해운 사옥을 소유 중이며, 해당 사옥의 현재 가치는 2000억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고, 매년 140억의 임대료를 챙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 한진해운의 ‘부실경영’의 가장 큰 책임자로 지목되는 최은영 전 회장은 책임회피를 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추가 사재출연에 대해서도 선을 긋는 등 여론의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뉴시스
그럼에도 최 전 회장은 추가 사재출연 여부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그는 27일 해수부 국정감사에서 “100억원을 출연한 상태고 경영권을 넘길 때 산업은행으로부터 신디케이트론을 설정할 때 집과 모든 재산을 담보로 내놨다”며 더 이상 사재출연은 힘들다는 책임회피 발언을 이어갔다. 바닥에 엎드려 눈물을 쏟기도 했지만, 자신의 재산 문제에는 즉각 선을 긋는 등 여론의 맹비난을 자초했다.
 
물론 경영진의 방만 경영 등에 대해선 단호하게 책임은 물어야 한다. 하지만 일파만파의 피해가 우려되는 만큼 일단 사태부터 조기 수습하는 것이 먼저다.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수습할 수도 있던 일이 이렇게까지 커진 만큼,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지고 있다.
 
유력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사태의 수습책임을 기업 측에만 미루는 것은 안 된다며, 한진해운을 일시적으로 국유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사태 수습 후 경영진과 대주주의 방만한 경영과 도덕적 해이에 대해 구상책임-형사책임-경영권 박탈 조치 등도 거론했다.
 
해양수산부 장관과 한국해양대 총장을 역임한 바 있는 오거돈 동명대 총장도 25일자 <국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진해운이 파산할 경우, 현재 글로벌 해운산업의 구조 및 경쟁체계에서 다시 한진해운과 같은 국적선사를 성장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국가 물류시스템 경쟁력 회복이 요원해진다“며 정부에 ‘선 구제, 후 수습’을 적극 제안했다.
 
현재 한진해운은 청산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를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오는 11월 경 ‘한진해운 회생이냐, 청산이냐’ 여부를 결정하게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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