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丁 의장 사퇴’ 현실적 한계…계파 갈등 우려에 국감 복귀로 전략 수정

▲ [시사포커스 원명국 기자]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열린 정세균 국회의장 사퇴 관철을 위한 새누리당 당원 규탄 결의대회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열린 정세균 국회의장 사퇴 촉구 결의대회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와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게 자신과 당 의원들의 소신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사흘째 단식농성을 이어가면서도 더 이상의 국회 파행은 실익이 적을 것이라 판단했는지 소속 의원들에게 29일부터 의정에 복귀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당초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공식적으로 국감 보이콧에는 변동이 없다는 듯 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계속 강경 기조를 이어가려 했지만 전날 불거진 김영우 사태 이후 일단 국감에는 복귀해야 한다는 일부 비박계 의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더 이상 단일대오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국감 복귀로 입장을 정리하게 된 것으로 관측된다.
 
또 여당이 연일 사퇴 압박을 넣고 있지만 정작 정 의장이 추호도 사퇴할 의사가 없는데다 정 의장 사퇴 결의안이나 징계안마저도 여소야대 정국에선 통과가 여의치 않다보니 무작정 의정을 보이콧한 채 정 의장 사퇴만을 외치기엔 현실적 한계가 분명하다는 부분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이 이날 내린 의정 복귀 결정으로 사실상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고 ‘판 뒤집기’를 위해 뒀던 초강수마저 무위로 돌아가면서 향후 정국에선 여소야대의 특성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김재수 해임건의안’ 외에도 ‘미르·K스포츠 재단’의 정권 실세 개입 논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관련 의혹 등 여야가 한 치도 물러서기 어려운 이슈들이 여전히 적지 않아 또 다시 국회 파행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 與 ‘국회 정상화’ 놓고 친·비박 이견 차 극명
 
하루 전 김영우 국방위원장의 국감 참석 선언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던 새누리당은 국감 3일차인 28일에도 이 대표가 단식농성을 지속하며 어떻게든 강경 기조를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오히려 전날 ‘김영우 사태’의 여파가 한층 확산돼 뒤숭숭해진 분위기를 띠었다.
 
실제로 비박계로 분류되는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의회주의를 지키자면서 국감을 거부하는 건 회사를 살리자면서 파업하는 것과 같이 모순된 것”이라며 “정세균 의회주의 파괴에 계속 싸워야겠지만 그 수단으로 의회주의를 내팽개치는 국감 거부를 지속해선 안 된다”고 입장을 내놨다.
 
그러면서 하 의원은 “국감과 정세균 규탄은 분리해서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고 국감 복귀를 거듭 촉구했다.
 
또 다른 비박계 의원이자 여권 내 대선잠룡인 유승민 전 원내대표도 같은 날 오전 국회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최고중진연석간담회에서 “단식투쟁은 당 대표의 결단이니까 그건 계속 하시고, 정세균 의장에 대한 당 차원의 투쟁은 계속 하더라도 다른 의원들은 국감에 들어가는 게 맞다”며 국감 복귀 주장에 힘을 실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 전 원내대표는 오전 의총 분위기에 대해 “다수는 여전히 강경한 분위기인데, 일부 소수가 (국감을) 빨리 시작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면서도 “지도부가 국감을 바로 수행하는 결단을 내렸으면 좋겠다”며 국감 보이콧 방침을 유지하고 있는 지도부를 압박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전날 김영우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국감 참석 선언으로 당의 단일대오가 크게 흔들렸음에도 불구하고 “국감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충분히 공감한다”며 김 위원장을 두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여기에 지도부 내 유일한 비박계 최고위원인 강석호 최고위원까지 같은 날 YTN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단식투쟁을 하되 국정감사는 정상화시키는 투 트랙으로 가면 어떠냐는 이야기가 있다’는 사회자의 질문에 “우리 최고위원들도 사실 겉으로 공개적으로 이야기는 안 합니다만 많은 의원들도 아마 그런 방법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공감은 하고 있다”며 동조하고 나섰다.
 
또 그는 사태 해결 방안으로 당초 정 의장 사퇴 요구보다는 한 단계 낮은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제시했는데, “제일 큰 목적은 사퇴지만, 이렇게 대화하고 의장의 진정성 있는 행동이 나온다면 우리도 다시 생각해 볼 문제 아니겠냐”며 이달 초 정 의장 개회사 논란 당시 대국민 유감 표명을 했던 점을 예로 들었다.
 
하지만 정 의장은 이날 오전 한국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외신기자간담회에서 “제가 유감표명을 할 내용은 없다”며 “법이 발의되면 의장은 그 안건을 처리할 책임이 있는 것”이라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아 이조차도 난망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이런 가운데 전날 국감 복귀 선언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던 김 위원장은 이날도 “정기국회와 국정감사 등 국회의 일정은 지켜져야 한다. 그건 국회의원의 특권”이라고 국감 참석 의사를 재차 굳힌 데 이어 “지금이라도 이정현 대표가 단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단식 중단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이 같은 비박계의 여론에 친박계는 즉각 진화에 나섰는데 오전 최고중진연석간담회 직후 민경욱 대변인은 “단일대오를 형성한다”는 입장을 내놨고, 이장우 최고위원은 이날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이 “전날 정진석 원내대표와 얘기를 했다”며 물밑 접촉 사실을 공개한 데 대해서도 S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현재는 전혀 없다. 불가능하다”고 전면 부인하는 등 기조 변화를 막는 데 안간힘을 썼다.
 
단식농성까지 하며 강경 투쟁을 이끈 이정현 대표도 이날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 참석한 가운데 한 토론자가 ‘정 의장이 사퇴할 방법이 현실적으로 없지 않느냐’고 지적하자 “물러날 수 없는 것이 어디 있느냐. 국회법을 지켜야 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안 지켜도 된다는 걸 실천하지 않았느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일 정도로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이에 발맞춰 정진석 원내대표까지 이날 오후 의원총회에 나와 흔들리는 강경 기류를 다시 일으키려는 듯 당내 이견 차를 보이는 온건파를 겨냥해 “당 지도부의 투쟁 방향에 일임해줬으면 그게 당론이고 그에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며 “죽어도 당론에 따를 수 없다고 하면 그건 무소속 정치를 하는 게 옳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 정 원내대표는 자신이 야권과 물밑접촉 했었다는 데 대해서도 “어제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만나자고 연락이 와서 접촉했는데 이정현 대표에 대해 이런저런 표현을 한 거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더라”라며 출구전략을 찾기 위해 먼저 접근한 것이 절대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못 박았다.
 
그러면서 그는 소속 의원들을 향해 “개인적 소신은 중요하지만 총의로 모아진 당론은 우선해서 존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거듭 강조한 뒤 “더 이상 당론과 괴리가 있는 일탈 모습에 대해선 당 지도부에서 좌시하지 않겠다”고 엄중 경고했다.
 
◆ 이정현, 돌연 ‘국감 복귀’로 선회…‘적전분열’ 우려?
 
▲ [시사포커스 원명국 기자] 새누리당 의원들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이처럼 당내 변화되는 기류를 되돌리기 위해 새누리당 지도부는 보다 강한 의지를 드러냈지만 점차 정 의장 사퇴를 목표로 한 대야 투쟁이 강경한 친박 지도부와 국회 정상화 목소리를 내는 일부 비박계 의원들 간 계파 갈등 형태로 비쳐지기 시작하자 자칫 투쟁의 본질 자체가 흐려질 수 있다고 우려했는지 이정현 대표는 돌연 국감 보이콧을 철회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세균 사퇴 관철을 위한 새누리당 당원 규탄 결의대회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와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게 새누리당 의원들과 제 소신”이라며 “내일부터 국정감사에 임해 달라”고 밝혔는데, 당내 투쟁 노선에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국감 복귀’ 사안에 대해선 참석으로 입장을 정리해 ‘적전분열’을 막는 데 우선했다.
 
다만 그는 대다수 비박계에서도 김영우 위원장을 제외하고는 크게 이견이 없었던 단식투쟁에 대해선 “제가 끝까지 남아 정 의장 사퇴할 때까지 단식을 계속 하겠다”며 이를 이용한 강경 투쟁 분위기는 지속해나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 뿐 아니라 새누리당은 의총을 통해 “내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검에서 정세균 의원을 형사 고발하는 법적 조치가 있을 예정”이라며 ‘직권남용’을 이유로 정 의장을 형사 고발하겠다고 예고한 데 이어 정진석 원내대표와의 협의 없이 정 의장이 차수변경했던 점을 근거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 청구서도 같은 날 제출하겠다고 전해 국감 복귀와 정 의장 사퇴 요구를 별개로 하는 투 트랙 전략을 펼쳤다.
 
하지만 이 대표의 갑작스런 입장 번복에 이번엔 거꾸로 당내 강경파들이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는데 ‘친박계 맏형’ 서청원 의원은 이날 오후 국감 복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한 직후 기자들에게 “오늘 투쟁을 해 놓고, 신문광고도 내일 다 나오는데 오늘 복귀하자는 건 수순이 잘못된 것”이라며 “정치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렇듯 정 의장 사퇴를 목표로 한 대야 투쟁이 ‘갈지 자’(之) 행보로 도리어 당내 혼란만 가중시키면서 일각에선 거꾸로 야권만 ‘어부지리’를 얻은 게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와 국회 정상화 이후에도 강경 기조를 이어가는 데 있어선 여당 지도부의 고민이 한층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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