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솔가 3세 황제병역 사건 계기로 재조명… 비판 목소리 높아져

▲ 일본에서 사업을 일으킨 롯데그룹의 특성 탓에 대체로 롯데가의 주요 인물들은 이중국적을 이유로 병역 의무를 빠져나갔다. ⓒ롯데그룹
한솔가 3세가 이른바 ‘황제 병역’ 혐의로 기소되면서 숱한 논란을 만들어 온 재벌 총수 일가의 병역 실태가 또 한 번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지난 18일 한솔그룹 창업주 이인희 고문의 손자 조모(24) 씨가 서울남부지방검찰청 형사1부에 의해 불구속 기소 당했다.

검찰에 따르면 2012년부터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한 조 씨는 1년여 간은 근무처로 지정된 금천구의 금형 제조업체에서 정상적으로 근무했지만, 2013년 1월 1일부터 지난해 10월 31일까지 1년 10개월여 동안 오피스텔을 얻어 별도의 관리 없이 독자적으로 근무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기에 조 씨는 애초에 병무청에 신고한 컴퓨터지원설계(CAD) 작업 대신 단순 도면 검토 업무만 수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오피스텔의 계약금은 조 씨가 지불했지만 월세는 해당 업체의 대표인 강 씨가 절반을 부담하기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함께 기소된 금형 제조업체 대표 강모(48) 씨는 조 씨가 오피스텔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도 정당한 이유 없이 서울지방병무청에 신상이동 통보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조 씨의 건강상 이유 때문에 별도로 사무실을 마련해 줬지만 부실 복무는 아니다”는 취지로 소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에 따르면 조 씨가 먼저 대인기피증을 이유로 “따로 사무실을 마련해 달라”고 먼저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강씨는 “한솔그룹 3세인 만큼 잘 대해주면 회사에 좋을 것으로 생각해 요구를 들어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지방병무청은 지난해 10월 조 씨의 이 같은 부실 복무 실태를 파악하고 산업기능요원을 편입을 취소하고, 지난해 12월 24일 검찰에 조 씨 등을 고발했다. 검찰 관계자는 “조씨가 혐의를 시인했고 도주 우려가 없으며 부실 복무한 기간만큼 재복무해야 한다는 점 등을 고려해 불구속 기소했다”고 설명했다. 

◆父子 ROTC·해병대 등 이색 복무도 눈에 띄어
반면 범현대가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인물들은 현역 복무를 마친 점이 눈에 띈다.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과 현대중공업그룹 정몽준 전 회장, 현대해상화재그룹 정몽윤 회장, 한라그룹 정몽원 회장 등은 모두 현역 복무를 마쳤다.

ROTC로 복무한 정몽준 전 회장의 아들인 정기선 상무도 최전방에서 ROTC로 복무해 정몽준 부자는 나란히 ROTC를 마친 이색 경력을 자랑한다. 정기선 상무의 사촌인 정경선 루트임팩트 대표 역시 고려대 재학 중 카추사로 복무를 마쳤고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과 정교선 현대백화점 부회장도 육군 병장으로 복무했다. 정일선 BNG스틸 사장과 정문선 전무, 정대선 현대 비에스앤씨 대표, 정몽일 현대기업금융회장 등도 모두 군 복무를 마쳤다.

이 같이 범현대가의 주요 총수들이 현역 복무를 마친 것은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영향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고 정주영 회장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현대가의 ‘밥상머리’ 교육의 결과라는 얘기다.

한화그룹 역시 상대적으로 깔끔한 병역 문제 해결이 돋보이는 그룹 중 하나다. 이는 한화의 역사가 한국화약이라는 방산업체를 모태로 하고 있고 현재도 삼성과의 빅딜로 세계적인 방산업체로 발돋움 하는 등 그룹 주력 사업이 방위산업이기 때문에 김승연 회장이 평소에 병역 문제에 대해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지론을 내세운 영향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은 면제를 받았다는 얘기도 돌고 있으나 실제로는 공군 학사장교로 복무를 마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남인 김동관 한화큐셀 상무는 공군에서 통역 장교로 복무했고 차남인 김동원 씨 역시 공군 장교로 복무했다. 막내인 김동선 한화건설 매니저는 아시안게임에서 국가대표 승마 마장마술 선수로 출전, 금메달과 은메달을 따는 등의 활약으로 예술체육요원으로서 군 면제 처분을 받았다.

SK그룹도 비교적 병역 문제를 성실히 해결해 온 곳으로 꼽힌지만 실제와 다르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SK그룹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의 장남인 고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과 차남인 최신원 SKC 회장은 해병대 출신이고 최신원 회장의 아들인 성환 씨 역시 해병대로 자원 입대 했다. 지난해에는 SK 최태원 회장의 차녀이자 노태우 전 대통령의 외손녀인 민정 씨가 해군 사관후보생으로 입영, 유례 없이 재벌 총수의 딸이 군 장교를 지원했다는 사실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로는 석연치 않은 이유의 면제자가 적지 않다. SK그룹을 이끌고 있는 최태원 회장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마찬가지로 체중과다로 면제를 받았고 사촌 동생인 SK케미칼 최창원 부회장은 ‘시력’ 때문에 면제를 받았다. 최태원 회장의 동생인 SK E&S 최재원 전 부회장도 시력으로 면제 처분을 받았다. 

◆롯데, 대부분 이중국적으로 빠져나가
그밖에 면제율이 38%로 조사됐던 롯데그룹은 주요 인물들이 대부분 병역을 면제받았다. 롯데그룹 총수 일가는 주로 일가 특성상 국적 문제로 병역을 피해갔다. 신동빈 회장은 1955년 출생 후 한국과 일본에 잇따라 호적에 등재돼 일본 국적을 유지하면서 병역을 피했다. 이후 신 회장은 1996년 한국 국적을 살시헀다가 2개월 후 회복했다. 롯데가의 3세 후계자로 유력시되고 있는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신유열 씨도 현재 일본 국적자로 병역 의무가 없다.

경영권 다툼에서 밀려난 형 신동주 씨도 일본 국적으로 군 소집을 피했고 신격화 총괄회장의 경우는 확실히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10대 후반부터 일본에 건너가 사업을 시작했다는 점을 볼 때 역시 일본 국적 때문에 면제를 받았을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또한 GS그룹과 LG그룹 일가도 면제율이 20%대 중후반에 달한다. LG가에서는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식 희성전자 사장, 구본걸 LG패션사장 등 이 정상적으로 병역을 마치고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의 아들인 구형모 LG전자 대리가 해군 병장으로 전역했다. 하지만 구본진 LG패션 부사장,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 구자준 LIG손해보험 회장의 장남과 차남 등은 면제됐다. 최근 별세한 구자명 LS니꼬동제련 회장은 전방에서 포병장교로 군 복무를 수행했다.

GS가의 경우 허창수 회장과 허진수 GS칼텍스 사장, 허태수 GS홈쇼핑 사장 등 주요 계열사 대표들은 군 복무를 마쳤으나 허창수 회장의 장남은 면제됐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촉구 목소리 높아져
이처럼 재벌 총수 일가의 병역 복무 실태를 살펴보면 성실히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국민들만 바보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절로 생기기 마련이다. 주요 인물들의 면제 사실이 두드러지는 범삼성가나 롯데가를 차치하고서라도 비교적 성실히 병역 복무를 이행했다고 알려진 기업들의 면제율도 대부분 일반인 면제율의 3~4배를 웃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3세, 4세로 내려올 수록 대상자가 많아지기 마련이라는 점에서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은 오늘도 어디선가 조용히 병역 의무를 피한 상태로 지내고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달 14일 병무청은 올해 7월부터 정당한 사유 없이 병역의무를 기피하는 사람의 인적사항을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공개한다고 밝혔다. 공개 대상은 국외 불법 체류자, ,징병신체검사 및 확인신체검사 기피자, 현역 입영 및 사회복무 소집 기피자 등이다.

재벌가의 병역 면제율을 놓고 보면 기피 의혹을 지우기 힘들다는 것이 중론이라는 점에서, 병무청이 오는 7월부터 연간 1000명 안팎에 이르는 병역 기피자의 인적사항을 인터넷에 공개하기로 했다는 점을 국민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있다는 것은 곰씹어볼 만하다.

병역은 이 땅의 아들이라면 모두가 감당해야 할 신성한 국민의 의무다. 돈이 있다고, 권력이 있다고 예외일 수는 없다. 재벌 총수 일가가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거듭나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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